* 부산을 좋아합니다. 많은 분이 부산을 좋아하시니까 대단한 선언은 아니겠지만 정말 좋아합니다. 매해 가을 국제영화제로의 부산도 좋지만, 여름 휴가시즌에 센텀 가까이에 숙소를 잡고 "영화의 전당"에서 틀어주는 고전 영화 하루 서너 편씩 골라 보며 피서를 하는 1인 영화제를 특히 좋아해 비밀리에 즐기고 있습니다. 영화제의 열기는 없지만 한산한 공간에서 영화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부산에서 아트북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든 생각 역시, '올해도 휴가를 써서 영화 보고 놀아야겠다!' 였습니다. 공식 행사의 주제는 "책과 바다 사이"지만 자체적으로 "영화와 책과 바다 사이" 를 즐기기로 작정했습니다. 부산아트북페어를 주최한 부산독립출판연구소와는 2013년에 열렸던 '스스로 독립출판의 모든 것' 프로그램에 제작자 토크를 가졌던 인연이 있었던지라 일찌감치 참여를 결정했습니다. 물론 2013년 당시에도 토크를 빌미로 부산에 며칠간 머물면서 영화를 잔뜩 봤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습니다. (외쳐 영전!)


* 마켓을 준비하며 가장 오래 고민한 것은 역시 '부산'에서 열리는 '첫' 마켓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지역에서 처음 열리는 마켓의 규모와 행사에 오실 관람객의 성격을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세일즈를 가늠하기(혹은 기대하기) 어렵다면 마켓의 목표를 [딴짓의 세상]을 알리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부산아트북페어의 소개 글 중에 "독립출판이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시간", "출판물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도 유익한 시간"과 같은 문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출발해 [딴짓의 세상]에서 첫 독립출판물 <ICELAND TRAVEL>을 제작하며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제작기를 A3 양면 먹 1도로 프린트해 무가지로 배포(100부)했습니다. 독립출판을 접하거나 시작하려는 분들이 마켓에 오신다면, 같은 위치에서 제가 겪었던 에피소드와 생각을 공유하는 읽을거리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그런 의도에 맞춰 제목도 유난히 유혹적(?!)으로 붙였습니다. <나는 어떻게 독립출판으로 세 권의 책을 만들고도 망하지 않았는가: 안 만들었다면 밥을 먹어도 한끼를 더 먹고 옷을 사도 한 벌을 더 샀을 <ICELAND TRAVEL> 독립출판기>. 또한 행사와 부스를 홍보하고 부산지역 독자에게 드리는 선물의 목적으로, 품절된 <THE SUMMER> 03 "파수꾼" 편의 약손상본을 한정 수량 할인,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 첫날 판매량을 보고 이튿날의 수량을 보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책을 얼마나 챙겨갈까 결정하는 일은 유달리 어려웠습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자고 되뇌어도 막판에 늘 낙관적이 되는지라 한 번도 책이 모자라 본 적은 없었(...)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작년 UE7에 (가져간 수량이 아닌) 실제 판매된 수량의 70퍼센트를 기준으로, 신간과 구간의 기간을 고려해 수량을 결정했습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품목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준비한 수량에 일치하는 판매가 이루어졌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죠. <ICELAND TRAVEL>처럼 부피와 무게가 상당한 단행본이 없었다는 점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세팅을 위한 집기를 포함해 큰 쇼핑백 두 개를 넘겼습니다.


* 부산에 이틀 먼저 내려가, 영화의 전당에서 영화를 보며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영화의 전당에는 상업영화관부터 예술영화관, 시네마테크까지 있으니까 여러분 꼭 체크하세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부산아트북페어가 열리는 아트소향은 마침 영화의 전당과 바로 맞닿아 있어서,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사전 행사로 열린 전시를 보러 갔습니다. 1회 아트북페어를 기념해 '책과 바다 사이'라는 주제로 20여 팀이 만든 이미지를 모은 전시에 [딴짓의 세상]도 참여했습니다. 전시장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마침 관람객이 없었는데 '입장은 이쪽으로' 라고 안내받아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품이 걸려있는 시원한 공간에 바다에서 녹음해 온 소리가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청량한 감각이 전시와 맞아떨어져 기분 좋은 관람이었습니다. 다른 팀의 멋진 이미지를 보면서 아. 부족했다, 는 생각을 여러 번 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바닷가에서 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딴짓의 세상



* 금요일 밤잠을 설치고 도착한 행사장에는 벌써 입장 대기 줄이 있었습니다. 행사 이틀 동안 각 5권에 한정해 <THE SUMMER> 03 "파수꾼" 편을 판매하기로 했는데, 혹시 이분들 중에...? 라는 생각이 들어 혼자 긴장해버렸습니다. 극소량을 판매하다 보니 오픈 전부터 기다리셨다가도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많이 서운해하셨지만 사정을 이해해주셔서 특별판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마켓 경험이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큰 행사에서 받은 인상이 크다 보다 그와 비교하며 행사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부산아트북페어는 전체 참가자의 수와 공간의 크기는 작았지만 많은 관람객이 공간을 채우는 현장의 분위기는 유사했다고 느꼈습니다. UE와 비교해 부스의 간격과 크기는 비슷하되, 밀도가 조금 낮아 관람객 입장에서는 조금 더 여유 있는 행사였던 것 같습니다. 첫째 날 오픈과 함께 많은 분이 오셔서 계획했던 구매를 한다면, 일요일은 전체를 관람하시면서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책을 구매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는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비슷한 경향이지만, UE가 한정판매나 이벤트 때문이라면 부산아트북페어는 첫 마켓에 대한 궁금증이 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한 집계는 주최 측에서 하셨을 테고 이런 인상은 제 부스에서 바라보고 느낀 것에 한정한 의견입니다) 한편 일요일 후반부에 <(YOUR) SUMMER>, <훈련용 수첩>, 엽서 일부가 품절되었는데, 마켓을 다 둘러보신 후에 구입을 결정해서 다시 오셨을 때 품절이라서 구매하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부산 외 지역에서 오는 제작자의 경우 수량 보완이 안 되기 때문에 (게다가 이전 행사라는 것이 없기에 감에 의존해 수량을 정해야 했으므로) 품절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모르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즐거운 인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ICELAND TRAVEL>이나 <THE SUMMER>를 구입하셨거나 보셨다고 말을 걸어주시는 분, 연초에 메이커즈 카페에서 했었던 아이슬란드 전시를 기억해주시는 분도 계셔서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2013년 '스스로 독립출판의 모든 것' 행사에서 토크를 들으셨던 분이 제작자로 작업을 이어가고 계신다는 인사도 받았고, <THE SUMMER> 04 "빌리 엘리어트"편의 부록으로 수록된 <Ballet for Beginners> 책 원본을 보시고 깜짝 놀라 말을 걸어주신 발레 전공자분이나, 박정민 배우의 친구분이 <THE SUMMER> 03 파수꾼 편을 보고 반가워해 주셨던 것도 재미있는 기억입니다. <THE SUMMER> 04 "빌리 엘리어트" 편의 기고자 한 분을 못 알아뵙고 스쳐버리기도...(??)


* 예상을 넘어서 많은 분이 오셨고, 참여한 제작자의 입장에서 많은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역으로 행사와 제작자가 관람객에게도 어떤 에너지를 전달해서 씬이 넓어지고 행사가 꾸준히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약된 행사가 흥하는 것도 좋지만, 그 관심과 에너지가 일상에서 꾸준하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면 더 좋겠습니다. 






* [딴짓의 세상]은 전시 "책과 바다 사이"에 참여하고, 마켓 "프롬 더 메이커즈"에도 참여했습니다. 28번 부스에서 <THE SUMMER> 04 "빌리엘리어트"편, <(YOUR) SUMMER>, <훈련용 수첩>, 아이슬란드 소책자 2종 <아이슬란드 책을 다시 책으로>,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 그리고 완전히 잊어버리기>와 엽서, 그리고 포스터를 판매했습니다. <THE SUMMER> 03 "파수꾼" 편의 특별 판매와 무가지 <나는 어떻게 독립출판으로 세 권의 책을 만들고도 망하지 않았는가>를 배포했습니다.

처음 열린 행사임에도 불편함 없이 행사에 즐겁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독립출판연구소의 두 서점 샵메이커즈(링크)프롬(링크) 에서 꼼꼼하게 준비해주신 덕이 아닌가 합니다. 운영팀을 비롯해 도움주신 스탭 모두 감사합니다. 인접한 부스에 있었던 "김강이""오늘의 풍경", "엣눈북스"를 포함해 만난 제작자분들도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 행사에 오셔서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주신 부산의 관객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부산의 독립출판 서점에서, 웹에서, 새로운 책과 작업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