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망한 영화제 노트>


영화제에서 망작을 보면 너무 슬프다. 망작의 특징과 그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성실하게 기록할 수 있는 망작 전용 노트. 통계 페이지까지 작성하면 다음 영화제에서는 망작을 덜 고르게 될지도 모른다..(장담하지 못합니다)

 

BIFFxMAKERS (링크)

이 제품은 21회 부산국제영화제와 독립출판서점 샵메이커즈의 기념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94x150mm, 32page, 3000








판매처 (품절되어 2017년 상반기 2쇄를 제작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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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가 행사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화장실을 오가는 사이, 오픈 직전이나 종료 이후 다른 부스를 빠르게 둘러보는 순간을 제외하면 60x120cm의 책상 뒤에서 그 부스가 가지고 온 책에 한정한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관객이나 기획자, 혹은 스탭으로 행사 전체를 경험하게 된다면 어떤 인상과 느낌을 받을지 늘 궁금합니다. 그렇기에 참가자 개인으로서, 그중에서도 [딴짓의 세상]이라는 부스로서 제가 가져간 책을 통해 느낀 행사의 후기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굳이 서두에 적어둡니다.)



# 트위터에서 시작된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디자인/미술/전시계로 이어진 10월은 "8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한 달가량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일민미술관 전 책임큐레이터 함영준 씨의 성추행 사건이 폭로되며 행사 자체가 한동안 마비된 것 같았습니다. 행사가 치러질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치러져야 할까 우려가 컸습니다. 일민미술관의 발표(링크) 이후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주최하는 유어마인드는 그동안 행사에서 일민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공동주관'에서 '후원사'로 변경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링크)

 어떤 참가자는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 참가를 철회했고, 어떤 참가자는 더 적극적으로 그곳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참여의사를 밝혔습니다. 서로 다른 결정이지만 두 의견 모두 공감이 갔고 한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주최 측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의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참가자로 그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 명분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 폭로된 사건의 가해자나 피해자 중에 나의 지인이 없기 때문에, 혹은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여전히 참가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새로 만든 책이 있고 이 책을 팔아야 한다'라는 개인적인 욕망을 실제 피해자가 있는 어떤 사건이나 지지하는 가치보다 우선하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부끄러운 자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0월 28일 트위터에 짧은 입장을 개시했습니다. 미진하고 추상적인 말이지만, 사건을 지켜보고 있고 공론화해주신 분을 지지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딴짓의 세상]은 "언리미티드 에디션 8-서울아트북페어 2016"에 참여합니다. 함영준 전 책임큐레이터에 대한 일민의 대응은 실망스럽지만, UE는 유어마인드 주최/주도의 행사라고 느껴왔고 공동주관에서 후원으로 역할을 조절한 조치에 공감했습니다. 사실 저는 학교에서 강제하는 그룹 작업에 지쳐서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주도적으로 해본다는 취지에서 [딴짓의 세상]이란 1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일을 경험하며 완전한 개인이란 환상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선 씬의 기울기를 인식하고, 작업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에 대한 매너와 예의를 지키겠습니다. 속한 곳에서 보이는 문제를 지나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함영준 전 책임큐레이터의 문제를 공론화해주신 피해자분들께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남은 기간 열심히 작업해 UE8에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트위터 원문 보기)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렸던 "제8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는 페미니즘 관련 부스와 선언, 프로그램이 전면에 드러나며 지금의 문제를 기록으로 남겼고, 관람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적어도 인상을) 전달했다고 느꼈습니다. 각 부스에서는 모 시인의 강제추행 사건 기소 요청을 위한 탄원서를 비치하고 서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할 사람 역시 제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번 행사의 참여가 그분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작년 UE7의 인상은 올해 참여한 독립출판 마켓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UE7 후기링크). 행사는 '이 정도가 독립출판 씬의 규모(스펙트럼)이고 속도다'라는 생각을 매년 초월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딴짓의 세상]은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신선함 팀도, 거대한 작업으로 압도하는 팀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씬 안에서 계속 지켜보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4-5년 전 처음 형성된 인상을 조금씩 업데이트한다면 바로 지금의 공기보다 느리거나 뒤처지는 감각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이를테면 기존에 참여해왔던 팀이 늘 해오던 방식 정도의 디스플레이를 가져왔다면 새로 참여한 팀 중에는 '이렇게까지 투자하다니?'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공들인 디스플레이가 보여서 재미있었습니다. 참여 횟수로 갈라서 비교할 수 있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대하고 온도 차는 스스로 약간 긴장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UE7에 즐겁게 참여했고 만족스러웠음에도 약간의 미진함이 있었던 것은, 책을 가져와 소개하는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매너리즘이었습니다. 점점 희미해지지 않기 위해 반복에서 비켜 나와 다른 '각'을 상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발견의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씬(혹은 행사)에서 참가자로서 가져야 하는 전략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즐거움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지난여름에 참여한 "프롬더메이커즈-부산아트북페어"에서는 판매보다는 [딴짓의 세상]을 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독립출판 제작과정을 담은 무가지를 처음으로 제작해 배포했습니다. 판매에 대한 생각을 덜어놓은 마켓은 산뜻하고 즐거웠습니다.



# 반면 이번 행사는 <녹색 광선> 번역서 발간이라는 중량감 있는 규모와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자리이다 보니, 이 책이 흥행하는 것이 이전에 기대했던 판매에 대한 목표보다 매우 높고 중요했습니다. 특히 독립출판 씬에서 소설은 읽어보기 전에 구매하기 가장 꺼려지는 품목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사전에 <녹색 광선> 책에 대한 인식과 구매 가능성을 가진 관람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했습니다. 협업자와 함께한 텀블벅은 비용 문제가 우선이었지만, 긴 제작과정을 공유하면서 책 표지, 뱃지, 천가방 등 시각적인 굿즈를 최대한 많이 노출했습니다. 어떤 관람객이 부스에서 책을 가리키며 '이거 인스타에서 하도 많이 봐서 기어난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의도했던 바였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사장에서 저는 관람객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서 있다가 책을 몇 페이지 이상 들춰보며 관심을 가지는 분께 설명 드리는 편인데, <녹색 광선>의 경우 표지와 산문으로만 가득한 내지로는 책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집어 드는 순간 설명 드렸습니다. '녹색 광선' 현상, 영화와의 연관성, 소설의 내용, 지금 번역되어 나온 이유, 처음 번역된 책이라는 사실 등 설명해야 하는 내용이 아주 많았고 여러 번 말이 엉키기도 했습니다. 텀블벅이나 SNS를 통해 이 책에 대한 이해가 있는 상태에서 오신 분이 많았다는 점이 다행이었습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1쇄가 모두 소진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27일 오후 중에 완전히 품절되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녹색 광선>은 각 협업자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해 만들었기 때문에 독립출판 서점의 매대에 올라갈 때 아주 불친절한 책입니다. 표지는 한글제목 없이 불어로만 표기되어 있으며 책등과 뒷면에는 아무런 글이 없습니다. 한글 제목은 약표제지와 판권면 표기가 유일합니다.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불친절한 책이 많은 독자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준비된 관객이 집약적으로 모이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행사이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 <녹색 광선> 굿즈로 제작한 뱃지를 검수하다가, 공정의 문제로 생긴 파본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팔리지 못한 채 제작자가 가지고 있을 뱃지들을 상상하다가 가장 심한 불량품 뱃지를 제작자에게서 사는 "망한 뱃지 삽니다" 이벤트를 트위터에 즉흥적으로 올렸습니다.(안내트윗 보기) 홍보가 짧았을뿐더러 현장에서도 판매 물품의 설명으로 바빠서 유령 이벤트가 되었고, 실제로도 트위터에서 망한 뱃지를 주시기로 사전에 이야기하셨던 [안녕,둔촌x가정방문](링크) 팀의 불량 뱃지 2종이 유일해서 그야말로 "망한 이벤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녕,둔촌x가정방문]에서 주신 그 불량 뱃지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34평형 평면도 불량 뱃지, 7.5평 평면도 불량 뱃지)

 행사 마지막 날에는 테이블 한쪽에 뱃지를 전시하고 관심을 가지는 관람객에게 '제가 이런 이벤트를 하는데요.' 하면서 망한 뱃지를 보여주고 함께 신기해했습니다. 돈으로 환산되는 시간이 아니고, 오직 재미밖에 없는 망한 뱃지 자랑타임은 정신없이 박스에서 책을 꺼내 판매하는 순간과 비등하면서도 다른 결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이벤트의 절정은 ([안녕,둔촌x가정방문] 부스에 가면 온전한 뱃지를 살 수 있음에도) 굳이 이 망한 뱃지를 사겠다고 하시는 관람객이 두 번의 가위바위보를 모두 이겨 뱃지를 다 사가신 순간이었습니다. 판매하기 싫은 판매자와 구매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이겨야 하는 이상한 순간이 즐거웠습니다. 망한 뱃지를 싹쓸어가신 분은 [안녕,둔촌x가정방문] 부스에 가서 자랑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트위터를 안 하시는지 보이지를 않네요...)

 그동안 [딴짓의 세상] 트위터를 운영하는 원칙과는 다르게 살짝 조증인 사람처럼 현장의 감흥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사실 참가자는 부스 뒤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데 이런 이벤트를 통해 내 방식으로 축제를 활보하는 경험으로 느껴져 시원했습니다. 마침 내년에 영화 <빌리 엘리어트>가 재개봉해서 프로파간다(링크)에서 제작하신 런칭 엽서를 받아 나누어드리면서 이 영화의 팬들과 재개봉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관람객이 부스에 와서 책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전달받는 기쁨과 에너지만으로도 상당하지만, 부스 뒤에서 이 행사의 판매자로 책을 판매(해야)한다는 위치에 머물지 않고 직접 만드는 작은 즐거움의 비중을 조금씩 늘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앞서도 적었지만, 작년에는 즐겁게 행사를 마치고도 어딘가 미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더 전투적?으로 즐겁게 행사에 참여했고 거의 3주가 지난 지금도 온전히 행사의 흥분에서 빠져나오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올해의 언리미티드 에디션 경험이 <녹색 광선>이라는 큰 책으로 인한 예외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딴짓의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작은 책을 만드는 제작자로 돌아갈 것이고, 올해 만난 반응과 기쁨이 내년의 기대치를 높여서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이 행사에서 책을 파는 것과는 무관한, 작고 사소한 시간을 더 많이 계획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작업자로서 일 년의 기준이 됩니다. 내년에 있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어떤 결과물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상상하며, 그것을 하나씩 작업으로 옮기며 다시 일 년을 보내려고 합니다. 즐거웠어요!






* 8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기간의 트윗: 모멘트 보기


* 지난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가 후기: 7회(2015) | 6회(2014) | 5회(2013) | 4회(2012)

* 언리미티드 에디션 책후기: 7회 책후기 (작년부터는 책후기도 남기고 있습니다. 8회 책후기도 시작하면 링크를 추가하겠습니다.)



* [딴짓의 세상]은 2층 C-37번 부스에서 처음으로 단독 부스로 참여했습니다. 쥘 베른의 1882년 소설 <녹색 광선>을 국내 최초로 번역, 발간해 공개했고 함께 제작한 천가방, 뱃지, 엽서, 메탈스티커 등의 굿즈도 판매했습니다. 지난가을 ShopMakers와 함께 제작한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념품 <너무 많은 영화 카드>와 <영화제 극장 의자에 앉아>, 그리고 성장영화팬진 <THE SUMMER> 04 "빌리 엘리어트" 편과 특별판 <(YOUR) SUMMER>도 판매했습니다. 내년 1월 재개봉 예정인 <빌리 엘리어트> 런칭 엽서를 프로파간다에서 제공받아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제작자에게서 불량 뱃지를 구입해 전시하고 다시 판매하는 "망한 뱃지 삽니다" 이벤트에서는 [안녕,둔촌x가정방문]팀의 평면도 뱃지 2종이 들어와 한 관람객에게 모두 팔려갔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요청받아 모 시인의 강제추행 사건 기소 요청을 위한 탄원서를 비치하고 서명받기도 했습니다.

 온라인상에서만 대화를 나눴던 마리님(<녹색 광선> 감교 및 교정), 표기식님(<녹색 광선> 면지 사진)과 처음으로 만나 뵙고 인사드렸습니다. 프로젝트에 함께해주신 디자이너 최지웅님, 원모어백 모모미님, 일러스트레이터 김호님과도 결과물로 인사드렸습니다. 바쁘게 오가며 인사드리고 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눈 참가자/참가팀과의 시간도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부스에 와서 책을 구경하고 구입해주신 분들의 이야기와 격려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가는데 큰 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딛고 더 멋진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기획하고 만들어주신 유어마인드와 기획팀, 그리고 스탭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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