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참여하는 이번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ICELAND TRAVEL> 합본호를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2011년부터 2년에 걸쳐 3권의 책으로 만든 여행기를 3년 만에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라서 다소 무리하더라도 써보고 싶었던 종이를 고르고 인쇄도 여러 관점에서 고민해봤습니다. 자신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200페이지가 넘어가는 단행본의 규모로 설득되는 책일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이틀간 행사장에 와 주신 분 중에는 예전에 서점에 읽어보셨다며 말을 걸어주신 분들도 계셨고, 구입했던 책의 인증사진을 보여주시거나 책을 가져와 주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뿌듯하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이미 시리즈로 나뉜 책을 보신 분들께 어떻게 전달될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처음 <ICELAND TRAVEL>을 보시는 분들께는 모든 내용이 새롭겠지만 이미 책을 다 읽으셨던 분들께 동어반복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5년이 되어가는 여행기 자체를 새롭게 쓸 수는 없었기에 문장을 조금 더하거나 덜어내고, 오래된 여행기를 다시 편집하는 관점을 사진을 표현하는 방식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합본호로 다시 책을 만나는 분들께 이전의 책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래서 구입을 권할만한 것인지 이야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다시 정리해 만든 합본호입니다'였던 설명은 행사가 진행되면서 '아이슬란드 여행기의 내용을 보강해서 만든 합본호입니다'로 바뀌었는데, 문장을 덜어내고 다른 관점으로 개입한 책을 '보강'이라는 단어로 표현으로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자문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세밀하게 설명할 시간이 없는 행사의 특성도 있겠지만, 이전의 책을 사주셨던 분들께도 팔아보려고 하는 심보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행사장에서 책을 구입하는 즐거움만큼이나 책을 읽는 중에도 즐거움을 느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관점을 바꿔 행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올해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포스터가 공개되었을 때가 기억에 남습니다. 포스터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홍보해야지! 했었는데 기세 좋은 포스터를 보면서, 내 작업을 이 압도적인 이미지와 같은 선상에 올려놓고 홍보해도 되는 걸까 싶어서 왠지 민망해졌습니다. 처음에는 행사에 비해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포스터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곧 그것이 이 포스터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립출판을 이야기할 때 종종 들리는 '규모의 착시'라는 표현. 사실은 아주 작은 시장이고, 관심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씬이 단 이틀 동안 의도적으로 폭발할 때, 그 규모를 부풀려 보이기 위한(나쁜 뜻이 아닙니다) 착시라는 점에서 참으로 적절한 포스터가 아닌가 싶어 납득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세련되고 커 보이는 행사의 얼굴 아래 사실은 다양한 사이즈와 형태의 작업들이 - 심지어 저의 작업도 - 들어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멋진 포스터와 제 작업을 함께 늘어놓는 부끄러움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지만요.


 한편 올해는 더 넓은 곳으로 장소를 옮겼음에도 '아직도 너무 좁고 복잡해서 관람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틀의 행사를 겪으면서 저는 그 말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반대로 아주 큰 행사장을 떠올려봤습니다. 이를테면 코엑스 같은 곳. 각 부스는 충분한 부스와 간격을 두고 있고, 관객도 넉넉한 동선을 확보합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더 많은 책이 판매될까...? 왠지 그럴 것 같지 않았습니다. 독립출판물을 열심히 보고 제작자와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분들께는 그편이 만족스럽겠지만, 이틀간 열리는 마켓의 활기를 구경하러 오신 분들께는 그 한산함이 지루한 동선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꼼꼼하게 책을 읽고 말을 걸어주시는 분들만큼이나, 눈으로 흘끗 보고 지나가거나 표지를 넘겨보는 것도 귀찮아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부풀려진 규모의 행사에는 부풀려진 규모의 관객이 모일 테고, 어떤 관객에게는 개별로 만나는 책과의 경험보다 공간과 온도가 주는 행사장과의 경험에 더 방점이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제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걸지도 모릅니다. 나중에는 코엑스 같은 규모를 가져가면서도 더 나은 행사가 만들어질지도 모르죠. 그런 언리미티드 에디션도 기다려집니다.) 지금은 사람들을 밀치고 나아가 이상한 한정판을 보고 구입할 때의 희열 같은 것. 그런 경쟁적인 분위기가 제작자와 관객 모두를 일정 온도 이상으로 뜨겁게 만들고 있고, 착시의 규모는 이틀의 마켓을 거치면서 실재하는 열기로 변환되어 다음 해의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씬의 규모보다 부풀려진 포장지 아래, 좁고 불편해서 모두의 체온을 올려놓는 지금의 형태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의 핵심이 아닐까,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곳 안에서 저는(혹은 우리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에 더 크고 잘 나가는 작업자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주제넘은 연극에 참여하는 초짜 배우의 흥분감 같은 것을 느끼며 2014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여했습니다. 들뜬 열기가 다음 일 년의 동력이 되어 내년에도 행사의 한 구석에서 인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딴짓의 세상은 2층 E01 부스에서 삐라를 만드는 노트인비트윈 옆에 있었습니다. <ICELAND TRAVEL> 합본호와 엽서세트, 일러스트 지도를 판매했고 2011~2012년에 만든 01, 02, 03 권도 샘플로 가져갔습니다. 성장영화팬진 <THE SUMMER> 01, 02호와 특별포스터로 01호 월플라워편에 그림을 그려주신 신모래 님의 "Living Room Routine"을 미니 포스터로 제작해 선보였습니다. 곧 제대하는 이창욱 군의 음악여행페스티벌 여행기 <기타는 왜 들고 다녀?>와 메이킹북 <나무에 죄짓지 마세요>도 판매되었습니다. 부스에 와서 인사하고 책을 봐주신 분들, 오래간만에 작업 이야기 나눈 참가자분들,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신 유어마인드 및 스탭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