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days 807.3km>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만들기 전 단계에 막혀있는지라 '만드는 어려움'의 근처에도 못 가고 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겁니다. <ICELAND TRAVEL>을 만들 때처럼 책에 대한 확신도 자신도 없고 스스로를 끄덕이질 못하는 지점이 있어서 계속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번 책은 807.3km의 스페인의 순례길을 31일간 걸으면서 하루 한 장씩 썼던 기록들과 여행길에 구입한 1유로짜리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원본사이즈 그대로 복원해 책으로 만든다는 초안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실 아이슬란드 여행기는 제 기록물 중에는 (독자를 생각한) 아주 친절한 텍스트였다면, 까미노에서의 기록은 거칠고 고쳐지지 않은 텍스트입니다. 문제는 이런 기록을 수정하고 다듬는 순간, 이 기록의 '어떤... 의미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지점'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있어서 입니다. 그러니까 날것의 기록이 가진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데 그것을 날것 그대로 전달하면 전달이 안 돼요. 뭐 이런 상황.


진짜 고민은 '이 기록은 어떤 의미가 있다'라는, 책을 만드는데 가장 기본이 되야하는 지점에서 확실하게 마음이 서질 못한 데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기는 그것이 가지는 초보 여행자의 정서라는 보편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면 책으로 만들 가치가 있겠다고.. 물론 이런 판단도 자의적일 수 있지만요. 그런데 <31days 807.3km>의 경우는 사실 제가 이 여행에서 얻었던 감흥이 컸고, 그래서 친절하고 보편적이지 않음에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사적인 욕심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발견하고 알아주지 않을까? 근데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니까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독립출판물은, 누구나 접근해서 어떤 기록이든 책의 형태로 묶어낼 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장점으로 인해 과잉의 생산물들이 너무 많다는 인상을 계속 받아왔습니다. 일기장에 끄적거릴 글이나 사진들을 인쇄해서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개인의 만족을 제외하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이 분명이 있고, 속으로 그런 책들을 안 좋게 흉보기도 합니다. 왠지 이번 책이 제 자신의 욕심...이나 만족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오만이 아닐까라는 생각.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와 이건 조금 종이가 아깝다. 이런 걸 책으로 만드니까 독립출판이라는 것에 대해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늘어날텐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될 까봐 걱정입니다. 그런 책이라면 만들지 않는 편이 나에게도, 독립출판 생태계에도, 지구에도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한마디로 이 모든 생각들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으니까 하루이틀 인디자인을 켜놓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이만큼 가 버렸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들과 더불어 현실적인 문제들 - 한정된 페이지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라거나 2도 인쇄를 할 때는 어떻게 해야하나 등등등 - 도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게다가 개강을 해서 마지막 학기인만큼 열심히 논문도 써야하고 또 가을방학의 앨범 작업도 시작되어 생각할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네요. 이번주에 사력을 다해 생각을 해서, 아무튼 나 자신에게는 끄덕거릴 결론을 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근데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죠? 저도 글로 잘 못 쓰겠어요.

그냥 이 모든 게 허세에 가깝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들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래서 멘토가 필요한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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