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상상력으로 보면 그 사건은 소설의 시작이었다. (소설 <녹색 광선> 중)





나의 독립출판 입문기


* 이 글은 <녹색 광선>의 번역자 박아르마 선생님이 지난 3월 14일 "교수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원 출처(링크)




외국문학 전공자로서 번역을 거쳐 책을 출간하는 일이 있다 보니 출판사 편집자들과 만나는 일이 종종 있다. 번역을 처음 시작한 20여 년 전에도 출판시장은 어려웠고 지금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그야말로 단군 이래 늘 불황이라는 출판시장이지만 올해는 더 어렵다는 말을 편집자들로부터 듣고 있다. 과거에는 번역자로서 출판사에 좋은 책을 소개해 출간하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요즘은 출판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출간을 결정한 책을 번역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가깝게 지내는 중견 소설가에게도 책을 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원하는 책을 내기 어려운 이유를 편집자의 혜안 부족이나 출판사의 소극적 경영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번역자로서 인문학 영역에 속하고 지나치게 실용성을 추구하는 책이 아니라면 출판사의 번역 제안에 대부분 응하는 편이다. 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이름이 상당히 알려진 번역자들 중에는 작은 규모의 출판사에서 온 번역 제의를 별로 친절하지 않게 거절하는 경우가 꽤 있다. 저자나 책의 내용이 출판사의 규모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 나로서는 그런 경우 시간만 허락한다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문화기술대학원에 다니는 대학원생으로부터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녹색 광선』을 독립출판 형식으로 출간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처음에는 번역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절할지 판단 자체가 어려웠다. 그 이유는 독립출판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고 물어물어 그러한 출판 형태에 대해 알고 나서는 출판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학원생에게 번역료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은 한 마디로 책의 기획과 편집,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도 1인이 직접 발로 뛰며 해결해 책을 출간하는 출판의 형태이다. 물론 몇 가지 과정은 전문가에게 의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립출판의 장점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우선 출판사의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주제, 구성, 디자인에 제약이 없이 모든 콘텐츠를 책으로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책의 인쇄와 유통 과정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 책의 유통은 독립출판을 시작한 사람들의 최대 어려움일 수 있지만 전국에 있는 독립출판 전문서점에 저자 혹은 기획자로서 직접 찾아가 현장의 반응을 살피고 독자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독립출판물을 비롯한 예술작품 등을 사고파는 플리마켓(flea market)에서 책을 유통하는 일도 책에 대한 독자의 반응을 직접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독립출판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출판비용 문제다. 독립 출판물들의 내용이 대개 여행, 가족사, 취미, 일상 등 출판을 하려는 저자 개인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이 많기 때문에 저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출판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릴 것이 아니라면 책을 소량으로 출간해 소수의 독자들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더 큰 기획이 필요한 작업이라면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크라우드 펀딩’의 한 유형인 텀블벅(tumblbug)을 통해 소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독립출판을 통해 책을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고 생각해보니 나도 이미 유사한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학위 논문을 출간할 때 온라인으로 원고를 보내고 원하는 수량을 자택에서 받아 가까운 사람들에게 드렸으니 말이다. 이른바 ‘주문형소량책출판(POD: Publish On Demand)’도 독립출판이 활성화되기 전에 있었던 개인 저작물 출판의 한 형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독립출판에 관심을 갖게 된 뒤로 지역에 있는 독립출판 전문서점을 가끔 찾게 됐다. 대개 독립출판 전문서점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공간 역할도 겸하고 있다. 책을 출간하려는 사람에게는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 종로구 익선동의 한옥 마을을 찾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골목의 한옥집을 개조해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혹은 사업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독립출판을 하는 사람들도 오래된 한옥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젊은이들처럼 아날로그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디밴드는 가요계의 2군’이 아니듯이 독립출판을 하는 사람들의 목표 역시 베스트셀러에 대한 꿈은 아닐 것이다. 쥘 베른의 『녹색 광선』이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과 만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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