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가 행사 전체를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화장실을 오가는 사이, 오픈 직전이나 종료 이후 다른 부스를 빠르게 둘러보는 순간을 제외하면 60x120cm의 책상 뒤에서 가지고 온 책에 한정된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관객이나 스태프, 혹은 기획자로 행사 전체를 경험하게 된다면 어떤 인상과 느낌을 받을지 늘 궁금합니다. 그렇기에 참가자 개인으로서, 그중에서도 [딴짓의 세상+frame/page]라는 부스에서 소개한 책을 통해 느낀 단편적인 후기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굳이 서두에 적어둡니다.)



# 제9회 언리미티드 에디션(이하 UE)의 윤곽이 밝혀졌을 때 가장 많이 화제가 된 것은 아무래도 새로운 장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북서울미술관이 얼마나 멀리에 있는지'가 여러 버전의 농담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을 채웠습니다. (처음엔 즐겁게 웃었지만, 조금 생각해보니 서울 중심적인(정확히는 서울중심 중심적인) 농담이라 옳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스 세팅을 위해 행사 하루 전 도착한 북서울 미술관은 이전에 참여했던 어떤 UE 행사장보다 넓고, 높고, 쾌적해서 먼 거리가 충분한 가치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매 1-2회마다 장소를 옮기는 UE는 마치 매번 새로운 행사인 듯한 환기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출입구로부터 내 부스는 얼마큼 떨어져 있지? 화장실은 어디지? 계단은? ... 2차원 평면을 보며 상상했던 배치도를 실제 공간에 자꾸 적용해보는 신입생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요. 그리고 (조금 드러운 이야기지만...) 보통 언리미티드 에디션 하루를 마치면 코와 목이 꽉 막히는데, 이번엔 그것도 절반 정도라서 정말로 괜찮은 장소였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소화할 수 있는 수준보다 항상 조금 더 많은 관객을 수용하는 행사의 특성상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참가자 입장에서는 옆 부스와의 간격이 확보되거나, 조금 더 쾌적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개인의 에너지를 조금 더 오래 지켜가며 행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 대체로 참가자/관람객의 거주지에서 먼 장소에서 행사가 열린다는 점에서 반대로 기대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낮은 접근성만큼 더 큰 의지(?)를 다지고 온 관람객이 조금 더 열정적으로 책과 작업물을 보시지 않을까. 그렇다면 약간 불편한 접근성은 역설적으로 제작자와 관람객 서로에게 더 좋은 행사의 환경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더 많은 관객으로 여전히 성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UE9 총 관람객 18,200명/UE8 16,000명. 공식 집계) '이제 UE는 어디에서 해도 되는 행사구나' 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 작년 UE에서 처음 공개한 <녹색 광선>은 함께해주신 분들의 이름에 힘입어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았고, 그 때문에 행사를 끝내자마자 어떤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작업일 텐데.' 분명한 하락세가 예상될 때 지금의 '예외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두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작 행사가 다가오자 신간 작업으로 머리가 터져나가서 작년의 기대감에 스스로 우려할 시간조차 없었지만요...) 그리고 작년에 했던 "망한뱃지 삽니다" 이벤트를 통해 UE의 '판매와 흥함'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스스로 이 행사를 '즐길 것이 있는' 이벤트로 만들어야만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올해는 작업물을 4가지 성격으로 구분해서 각각을 구매하신 분께 증정할 핀버튼을 제작했습니다. 제작에 들어가는 돈과 수익을 계산하는 대신, 작업과 연결된 작은 선물에 즐거워하는 관람객의 모습을 작은 이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 올해 언리밋에서의 작은 목표는 (행사의 의도에 반해) "가능하면 다른 부스를 돌아보지 않는다" 였습니다. 씬의 최대치가 모여 한해를 결산하는 느낌을 주는 UE에서는 유난히 씬의 방향을 가늠하고 내 작업의 좌표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한 스타일의 작업을 확립한 제작자가 아닌지라 '지금 저런 방향이 주목받는구나', '저런 작업 너무 부럽다' 라는 생각이 나에게 자양분이 된다기보다는 생각을 흩뜨려놓으며, 나아가서는 UE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어차피 친구가 부스를 맡아주는 잠깐동안 빠르게 돌아볼 수밖에 없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도 했고요. 그리고 사실 (작은 비밀을 고백하자면) UE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도 구경 못 했어요ㅠㅠ"라고 말하곤 했지만... 사실 그다지 "ㅠㅠ"가 아니랍니다. 일 년을 꼬박 기다려 단 이틀동안만 열리는 행사의 부스에서 관람객을 만나는 일 분 일초가 너무 재미있어서 저는 그것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 그래서 사실 행사 전체를 아우르는 어떤 생각이나 소회..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보다는 부스를 찾은 분들께 책을 소개하는 순간,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분 좋은 말, 증정품을 받는 기쁜 얼굴 같은 단편적인 순간들로 모자이크한 시간 전체가 즐겁게 남았습니다. 


# 그럼에도 모두가 손뼉치며 행사 종료를 축하하자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충동적으로 <구니스와 함께한 3주> 3권과 구니스 뱃지 한 개를 들고 1-2층을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그때 2층에 처음 올라가본...) 가장 먼저 보이는 순서대로, 좋아하는 제작자분들께 "이거 새로 만든 건데 받아주세요!" 하고 책과 뱃지를 안겨드렸습니다. 그 짧은 전력 질주가 즐거웠어요.



# 사실 언리미티드 에디션 행사의 흥분을 곱씹는 후기를 쓰기에는... 너무 많이 늦었습니다;; 올해는 소개해야 하는 작업의 양에 비례해 부스의 크기는 점점 커지는 데 반해 의사결정의 속도와 노동은 그에 따라가지 못해 페어에 참여할 때마다 허덕였던 것 같습니다. 부스 벽면은 영화 <구니스>의 대사 "Goonies Never Say Die!"와 책 <구니스와 함께한 3주>의 일부를 레터링 작업으로 꾸몄는데, 사실 처음 해본 작업이라 작은 글씨들을 떼어내는데 그렇게 많은 수작업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습니다. 거의 모든 부스가 철수한 늦은 시간까지 레터링을 하나씩 떼어내는 걸 가엾게 여긴(보다 못한...) 스태프분과 가까운 제작자분께서 철거를 도와주셨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이건 시간/작업량/에너지 문제로 하면 안 되는 일이다'라고 말해 줄 사람이 없이 혼자 계속 해낼 수 있을까, 혹은 해도 되는 걸까 계속 고민했습니다. 작업의 방식이나 운영까지 바꿀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일 년의 작업을 계획하는 연말, '딴짓의 세상'과 출판사 'frame/page'에게 남은 질문입니다.





(고맙습니다....)






* 지난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가 후기: 8회(2016)7회(2015) | 6회(2014) | 5회(2013) | 4회(2012)



* 이번 행사는 출판사 [frame/page] 등록 이후 [딴짓의 세상 + frame/page] 이름으로 참여하는 첫 UE였고, 신간 <구니스와 함께한 3주>를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녹색 광선>과 굿즈, BIFFxMAKERS 영화제 굿즈, 영화 <우리의 20세기> Salem 포토카드집 등 한해의 작업을 소개하고 판매했습니다. 2018년 재발간될 <THE SUMMER> 01 "월플라워"편을 특별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부스 위치: 1층 C-10)

바쁜 와중에 부스에서, 복도에서 만난 참가자 혹은 제작자와 인사하고 각자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부스에 와서 책을 구경하고 구입해주신 분들의 이야기와 격려가 다음 작업으로 이어가는데 큰 동력이 될 것 같습니다. 철수 도와주신 주현님, 문주님, 유수님, 지현님, 로제님, 라야님 정말 감사합니다. (당시 너무 정신이 없었어서... 혹시 표기하지 못한 분이 계신가 싶어요; 그렇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촉박한 시간 안에서 언제나 작년보다 더 멋진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어가시는 유어마인드와 기획팀, 그리고 스태프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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